"2026년은 그동안 우려하던 위기 요인들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해가 될 것이다. 남의 기술을 빌려 쓰는 것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우리만의 '피지컬(Physical) AI'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5일 임직원들에게 전한 2026년 신년사의 핵심은 '냉철한 현실 인식'과 '기술 자립'이었다.
정 회장은 글로벌 무역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2026년을 '복합 위기의 해'로 규정하고, 이를 돌파할 해법으로 하드웨어 경쟁력에 AI를 결합한 '피지컬 AI'의 내재화를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그룹의 체질 자체를 AI 중심으로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정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참여한 좌담회 형식의 신년회 영상을 전 세계 임직원들에게 이메일로 공유하며 새해 업무를 시작했다.
정 회장은 서두에서 "2025년이 전례 없는 변화의 시기였다면, 올해는 수익성 악화와 경쟁사들의 침투, 특정 지역 사업 중단 등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엄중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정 회장은 이러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고객 관점의 체질 개선 ▲본질을 꿰뚫는 민첩한 의사결정 ▲과감한 협력을 통한 생태계 확장을 3대 키워드로 꼽았다.
특히 정 회장이 가장 방점을 찍은 분야는 AI였다.
정 회장은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기업과 산업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며 "외부에서 빌려온 기술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생명력으로 체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중심의 AI를 선점했지만, '움직이는 실체'인 자동차와 로봇, 그리고 방대한 제조 공정 데이터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에게는 '피지컬 AI'라는 확실한 승부처가 있다는 자신감이다.
정 회장은 "데이터와 자본, 제조 역량을 갖춘 우리에게 AI는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며 독자적인 기술 내재화를 강하게 주문했다.
조직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도 촉구했다.
정 회장은 "리더들이 모니터 속 숫자와 자료에만 매몰되지 말고 현장에서 상황의 본질을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보고를 위한 보고, 익숙한 틀을 과감히 깨고 '이것이 정말 고객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민첩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관료주의적인 태도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정 회장은 또한 국내 투자와 상생에 대한 의지도 재확인했다.
현대차그룹이 2030년까지 계획한 125조 2천억 원 규모의 국내 투자에 대해 정 회장은 "단순한 외형 확장이 아닌, 기존 사업을 단단하게 만들고 미래를 차분히 준비하는 질적 성장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공급 생태계의 경쟁력이 곧 그룹의 경쟁력"이라며 협력사 및 파트너사들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이날 신년회에서는 장재훈 부회장을 비롯해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배석해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 미래 핵심 사업 전략을 공유했다.
정 회장은 신년사를 마무리하며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의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는 정신을 인용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움직여온 힘은 어떠한 시련에도 도전하는 정신"이라며 "불확실한 미래를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전 임직원이 한 팀으로 움직이자"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