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담합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불공정거래를 억제하기 위해 과징금 제도를 전면 손질한다.

형벌 중심 제재에서 벗어나 과징금 상한을 대폭 높여 부당이득 환수와 억지력을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0일 불공정거래 기업에 대한 제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과징금 제도를 전면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은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 중인 '경제형벌 합리화' 정책과 맞물려, 과도하거나 실효성이 낮은 형벌 규정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제재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완하기 위한 조치다.

핵심은 형벌을 줄이는 대신 과징금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에 대해서는 형벌을 폐지하는 대신 과징금 상한을 현행 관련 매출액의 6%에서 20%로 크게 높인다.

그간 해당 행위는 형벌 규정이 존재했지만 실제 적용 사례는 드물었고, 과징금 부과 수준 역시 낮아 억지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공정위는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국내 과징금 상한이 낮다는 점을 감안해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담합에 해당하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과징금 상한도 현행 20%에서 30%로 높아진다. 담합은 소비자 부담을 직접적으로 키우는 대표적 불공정행위인 만큼, 위반 기업에 실질적인 재무적 압박이 작용하도록 제재 수위를 끌어올린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법 등 이른바 '갑을 관계' 관련 법률에서 총 31개 위반 유형에 대해 형벌을 폐지하고 과징금 중심의 제재 체계로 전환한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비롯해 하도급 서면 미발급, 가맹 정보공개서 숙고기간 미준수, 대규모유통업자의 부당한 경영활동 간섭, 대리점에 대한 경제상 이익 제공 강요 등이 대상이다.

경제력 집중 억제와 관련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새로 도입한다.

지주회사 및 대기업집단 관련 규정 탈법행위, 순환출자 및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규정 위반 등 기존에 시정조치와 형벌로만 규율하던 4개 유형이 포함됐다.

공정위는 형벌 폐지 이후 시정조치만으로는 억지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보고, 위반액의 최대 20% 수준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한다.

디지털 분야 불공정거래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시장 획정이 어려운 온라인·플랫폼 영역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과징금 상한을 현행 관련 매출액의 4%에서 10%로 높여, 유력 사업자의 위법행위에 실질적인 제재가 이뤄지도록 한다.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는 거짓·과장 광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

표시광고법상 과징금 한도는 관련 매출액의 2%에서 10%로 상향되고, 전자상거래법 위반 중 거짓·기만적 유인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제도가 개선된다.

그간 영업정지에 갈음해 부과되던 과징금이 지나치게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관련 매출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 적용하는 정액 과징금도 전반적으로 상향된다.

부당지원행위의 경우 정액 과징금 상한이 현행 4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높아지는 등, 공정거래법과 관련 개별 법률 전반에서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된다.

반복 위반 사업자에 대해서는 한 차례 재위반만으로도 과징금을 최대 50% 가중하고,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100%까지 추가 가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내년 상반기 중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하고, 시행령과 고시 개정도 같은 시기에 마무리할 방침이다.

아울러 내년 초 연구용역을 통해 정액 과징금 부과 방식 등 과징금 제도 전반을 재점검해 보다 정교한 제재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형벌을 줄이되 불공정거래에 대한 억지력은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 이번 제도 개편의 핵심"이라며 "부당이득을 실질적으로 환수하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