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라는 신대륙을 선점하기 위해 막대한 실탄을 쏟아붓는 이른바 '쩐의 전쟁'이 격화되면서 '현금 부자'로 통하던 글로벌 빅테크 공룡들이 빚더미 위에 앉았다.

풍부한 내부 유보금만으로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는 인프라 투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대규모 회사채 발행을 통해 외부 수혈에 나선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들의 공격적인 레버리지(차입) 전략이 향후 수익성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금융정보업체 딜로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들어 12월 첫째 주까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4283억 달러(약 600조 원)에 달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 중 미국 기업이 3418억 달러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고, 유럽(491억 달러)과 아시아(330억 달러) 기업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금리 인하 기대감과 투자자들의 수요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AI 경쟁의 결과물이다.

미셸 코넬 포르티아 캐피털 매니지먼트 대표는 "AI 칩의 수명이 짧고 기술 진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구조적 특성상, 기업들은 끊임없이 막대한 자본적 지출을 집행해야만 한다"며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빚을 통한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버는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로이터가 시가총액 10억 달러 이상인 테크 기업 1000여 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지난 9월 말 기준 이들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총부채 비율 중간값은 0.4배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펜데믹 당시 부채가 급증했던 시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물론 아직 위험 수위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총부채 대비 영업현금흐름 비율이 지난 2분기 12.3%까지 떨어지며 5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채권 시장의 투자 심리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기업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오라클의 5년물 CDS 프리미엄은 최근 두 달 새 두 배 가까이 뛴 142.48bp(1bp=0.01%포인트)를 기록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9월 말 20.5bp 수준에서 35bp까지 치솟았다.

투자자들이 빅테크의 재무 건전성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스콧 비클리 인포테크 리서치 그룹 자문위원은 "현재의 과열된 시장은 주가 부양을 위해 '모 아니면 도(Go big or go home)' 식의 투자를 정당화하는 자기 위안적 서사에 취해 있다"고 꼬집으며 "하이퍼스케일러(초거대 AI 기업)들의 이러한 운영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AI 거품론과 함께 빅테크의 재무 리스크가 내년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