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자산 관리의 보루여야 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민낯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소상공인 재기를 돕기 위한 '새출발기금'은 고소득자와 코인 투자자의 '빚 세탁소'로 전락했고, 구조조정 기업을 살려야 할 자금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내부적으로는 승진 정원을 멋대로 늘려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15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한국자산관리공사 정기감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문책 4건을 포함해 총 14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 연봉 8,000만 원 받아도 빚 60% 탕감…'코인'은 검증도 안 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30조 원 규모(출범 당시 목표)의 '새출발기금' 운영 실태다.
이 기금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의 빚을 줄여주는 것이 핵심이지만, 제도의 허점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
감사 결과, 빚을 갚을 능력이 충분한데도 원금을 감면받은 사례가 수두룩했다.
현행 규정상 소득 대비 채무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변제가능률'이 100%를 넘으면 원금 감면을 해주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캠코는 변제가능률이 아무리 높아도 최소 60%를 일률적으로 감면해주는 불합리한 구조를 고수했다.
실제로, 월 소득 8,084만 원(연봉 환산 약 9.7억 원)을 버는 고소득자 A씨는 매월 641만 원만 갚으면 되는데도, 새출발기금을 통해 빚 3억 3,000만 원 중 2억 원(62%)을 탕감받았다.
이렇게 상환 능력이 충분한 1,944명이 감면받은 빚만 840억 원에 달한다.
재산 조사 시스템은 '구멍' 그 자체였다.
캠코는 신청자의 부동산이나 예금은 조회했지만, 가상자산(코인)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감사원이 감면 대상자들을 전수 조사해보니, 269명이 신청 전후로 1,000만 원 이상의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탕감받은 빚은 총 225억 원이다. 빚 탕감 직후 코인 계좌 잔액이 4억 5,000만 원으로 불어난 사례도 적발됐다.
빚은 세금으로 메워주고, 숨겨둔 코인은 그대로 챙긴 셈이다.
# 구조조정 기업 살린다더니…美 AI 기업에 '묻지마 투자'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된 '기업지원펀드' 운용도 엉망이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국내 구조조정 기업(구조개선기업)을 도와야 할 돈이 엉뚱하게도 재무가 탄탄한 기업이나 해외 기업으로 흘러갔다.
감사원에 따르면, 캠코는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명확한 투자 기준 없이 펀드를 운용했다.
그 결과, 한 펀드는 국내 구조조정과 무관한 미국의 비상장 유니콘 기업(AI 클라우드 서비스)에 48억 원(총투자 450억 원)을 투자했다.
영업이익이 1,000억 원이 넘고 부채비율도 양호한 우량 기업에 131억 원을 투자한 사례도 있었다.
설립 취지를 망각한 단순 수익 추구형 투자가 공공연하게 이뤄진 것이다.
# 주인 없는 국유지…216억 원 공중에 날려
국가 자산 관리라는 본연의 임무도 소홀했다.
캠코가 관리 위탁받은 국유지 중 무단 점유된 땅만 7만 9천여 필지에 달했다. 이 중 5만8,000여 필지(73.4%)는 변상금조차 부과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소멸시효 관리였다.
변상금을 받으려면 체납자의 재산을 압류해 시효를 중단시켜야 하는데, 담당자들의 업무 태만과 전산 오류 등으로 압류 가능한 재산이 있는데도 방치했다.
이로 인해 시효(5년)가 지나 징수할 수 없게 된 돈이 확인된 것만 29억 원, 사전통지 반송 등을 방치해 날린 돈까지 합치면 216억 원에 육박한다.
# 인사 전횡…승진 인원 '고무줄' 늘리기
내부 통제 시스템은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정부가 공공기관 정원 감축을 추진하던 2022년 말, 캠코는 오히려 승진 인원을 부당하게 늘려 '승진 잔치'를 벌였다.
당시 인사 담당 부서장은 2023년도 승진 심사에서 정당한 승진 가능 인원(87명)보다 9명 많은 96명을 승진시켰다.
승진 인원이 예년보다 적어 불만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2024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5명을 더 승진시켰다. 이 과정에서 승진 대상조차 될 수 없었던 순위 밖 직원들이 대거 승진 대상에 포함됐고, 실제 승진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인사위원회에서는 평가 점수를 누락해 승진 순위가 뒤바뀌거나, 특정 항목 점수를 다른 항목에 그대로 복사해 넣는 등 부실 심사가 만연했다.
감사원은 캠코 사장에게 관련자 문책(4명)을 요구하고, 새출발기금 감면율 산정 방식 개선, 가상자산 등 은닉 재산 조사 강화, 국유지 무단 점유 관리 대책 마련 등을 통보했다.
캠코 측은 "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지적된 사항에 대해 즉시 시정 조치하고 내부 통제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외면한 채 방만 경영을 일삼은 국책 금융공기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