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하락 안정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를 뚫고 올라가는 '강달러' 충격으로 11월 수입 물가가 석 달 만에 큰 폭으로 반등했다.

통상 수입 물가는 1~3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행 지표라는 점에서, 안정세를 찾아가던 국내 물가 관리에 다시금 '비상등'이 켜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2025년 11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잠정)'에 따르면 11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는 141.82(2020=100)로 전월 대비 2.6% 상승했다. 이는 지난 8월 이후 3개월 만의 상승 전환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11월 두바이유 평균 가격이 배럴당 64.47달러로 전월(65.00달러)보다 0.8% 하락했기 때문에 수입 물가 역시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원·달러 평균 환율이 10월 1,423.36원에서 11월 1,457.77원으로 한 달 새 2.4%나 급등하면서 유가 하락 효과를 완전히 상쇄해버렸다.

환율 상승분이 원자재 가격 하락분을 압도하며 전반적인 수입 단가를 밀어 올린 것이다.

용도별 등락을 뜯어보면 국내 산업과 가계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우려된다.

우선 난방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을 앞두고 원재료 수입 물가가 전월 대비 2.4% 올랐다. 국제 유가는 달러 기준으로 내렸지만, 고환율 탓에 원화 환산 가격인 광산품 수입 물가는 오히려 올랐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가 3.8% 올랐고, 원유도 1.6% 상승했다. 식탁 물가와 직결되는 농림수산품 중에서는 쇠고기 수입 가격이 전월보다 4.5% 올라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예고했다.

제조업 생산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중간재의 상승 폭은 더 가팔랐다.

중간재 수입 물가는 전월 대비 3.3% 뛰었다. 특히 AI(인공지능) 등 전방 산업 수요가 지속되고 있는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 수입 물가가 8.0%나 급등해 상승세를 주도했다.

이 중 플래시메모리는 전월 대비 23.4%나 폭등했으며,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도 10.0% 오르며 관련 기업들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 밖에도 1차 금속제품이 2.9%, 화학제품이 1.5% 각각 상승하며 전반적인 산업 자재 가격의 오름세를 이끌었다.

자본재와 소비재 역시 환율 효과를 비켜가지 못했다.

자본재는 전월 대비 1.5%, 소비재는 1.8% 각각 상승했다. 특히 소비재 중 가전제품인 가정용 전자레인지(2.5%)와 기호식품인 초콜릿(5.6%) 등의 수입 가격 상승이 눈에 띄었다.

수입 물량 자체도 늘어나는 추세다.

11월 수입물량지수는 1차 금속제품과 화학제품 수입 증가에 힘입어 작년 같은 달보다 4.3% 증가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물량과 가격이 동시에 오르는 구조는 기업의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시차를 두고 제품 가격 인상으로 전가될 공산이 크다"며 "고환율이 진정되지 않는 한 수입 물가발 인플레이션 압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고 밝혔다.

한편, 11월 수출물가지수는 139.73(2020=100)으로 전월 대비 3.7% 상승했다. 이는 지난 8월 이후 3개월 만의 상승 전환이다.

수출 물가는 주력 품목인 반도체와 '고환율 효과'가 맞물려 큰 폭으로 뛰었다.

공산품 수출 물가는 전월 대비 3.7% 올랐는데, 특히 인공지능(AI) 열풍 지속에 따른 수요 증가로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가 7.2%나 상승했다.

품목별로는 D램 수출 가격이 전월 대비 11.6%, 플래시메모리가 23.4% 급등하며 반도체 업황의 회복세를 방증했다.

이외에도 석탄 및 석유제품(4.9%), 1차 금속제품(3.1%) 등이 환율 상승분을 반영하며 오름세를 보였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수출 물가는 7.0% 상승한 수치로, 우리 기업들의 수출 채산성 확보에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