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한 반도체 장비 반입을 내년까지 1년 더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달 말로 예정됐던 포괄적 허가(VEU) 종료를 앞두고 제기됐던 '장비 반입 중단'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게 됐다.
하지만 항구적인 유예가 아닌 1년 단위의 한시적 조치라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당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6년 한 해 동안 중국 내 생산 시설에 반도체 제조 장비를 반입할 수 있도록 하는 '연간 라이선스(Annual License)'를 승인했다.
로이터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워싱턴(미 정부)이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과 관련해 연간 단위의 승인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대만의 TSMC는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에서 예외를 인정받는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통해 별도의 허가 없이 장비를 반입해왔다.
그러나 이 특별 권한은 오는 31일부로 종료된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는 중국 공장으로 향하는 미국산 반도체 장비에 대해 건별 혹은 기간별로 미 상무부의 수출 라이선스를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번 1년 연장 조치는 한국 기업들에게는 일단 '단비'와 같다. 당장 내년부터 장비 공급이 끊길 경우 중국 공장의 가동률 저하는 물론, 공정 업그레이드 차질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과 다롄 낸드 공장 등 중국을 핵심 생산 거점으로 삼고 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으로 레거시(범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중국 내 생산 차질은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다만 이번 조치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 기조 속에서 나왔다는 점은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로이터는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의 수출 통제가 지나치게 느슨했다고 판단하고, 중국의 첨단 기술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이번 승인은 급격한 공급망 붕괴를 막기 위한 일시적 유예일 뿐, 언제든 규제의 칼날이 다시 한국 기업을 겨눌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VEU와 같은 무기한 유예가 사라지고 매년 라이선스를 갱신해야 하는 '시한부' 체제로 전환된 셈"이라며 "미중 갈등의 파고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