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기 본지 회장


"농촌은 망해가는데 농협은 흥청망청이다."

농민들 사이에서 자조 섞인 한숨처럼 떠돌던 이 말이, 정부 감사 결과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농협중앙회 및 농협재단 특별감사 결과는 충격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드러난 행태는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을 망각한 수준이 아니라, 농민을 숙주 삼아 기생하는 거대한 '이권 카르텔'의 민낯이었다.

조직의 수장인 중앙회장의 행보부터가 '도덕적 파산' 상태다. 규정상 1박에 250달러(약 33만 원)로 정해진 해외 숙박비 한도는 그에게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특별한 사유도 없이 규정보다 최대 186만 원이나 더 비싼 호화 객실을 이용하며 4,000만 원의 혈세를 허공에 날렸다.

쌀값 폭락에 피눈물 흘리는 농민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감히 법인카드를 이렇게 긁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임원들의 파렴치함은 한술 더 뜬다.

농협경제지주는 2024년 81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거나 연봉을 반납하고 비상 경영에 돌입했을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이사회 현장에서 '깜짝 안건'으로 '특별성과보수'를 상정해 자기들끼리 1억 5,700만 원을 나눠 가졌다. 적자가 나든 말든 내 주머니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식의 '약탈적 경영'이다.

내부는 그들만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쓰고 있었다.

신임 이사에게는 포상비로 태블릿 PC를 사주어 개인 소유로 넘기고, 퇴임할 때는 전별금에 순금 기념품까지 쥐어 보냈다.

2022년 대의원대회에서는 참석한 조합장 전원에게 220만 원짜리 최신형 휴대폰을 돌리며 하루 만에 23억 원을 탕진했다. 농민의 출자금이 임원들의 사치품 구매 비용으로 전용된 셈이다.

조직 운영은 '끼리끼리' 문화의 결정판이었다. 중앙회 이사들이 조합장으로 있는 '귀족 조합'에는 일반 조합보다 무이자 자금 지원이 26%나 폭증했다.

선거를 의식한 매표 행위나 다름없다. 퇴직 선배들이 만든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자회사 건물을 공짜로 쓰게 하는 전관예우는 기본이었다.

농협재단이 체결한 계약의 99.8%가 수의계약이었다는 사실은 이곳이 공적 조직인지 사적 모임인지 의심케 한다.

성 비위나 횡령 같은 중대 범죄조차 '제 식구 감싸기'로 덮었다.

인사권을 쥔 중앙회 부회장의 입김 아래, 감사 조직은 중징계 사안을 경징계로 뭉개는 '면죄부 자판기'로 전락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부패할 수 있는지 농협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번에 적발된 비위 혐의를 수사 의뢰하고 고강도 개혁을 예고했다. 하지만 단순히 몇몇 임원을 처벌하고 규정을 고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농협은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농민을 위한 봉사 조직이 아니라, 농민 위에 군림하며 잇속만 챙기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지금 농협에 필요한 것은 수술이 아니라 대대적인 '재건축'이다.

중앙회장의 제왕적 권력을 해체하고, 비리가 발붙일 수 없도록 투명성을 강제하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만약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간다면, 농민과 국민은 농협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농민의 고혈을 빠는 흡혈 귀족이 된 농협, 환골탈태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농업을 살리는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