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현대차그룹, SK,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이 향후 5년간 총 약 803조 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한미 관세 협상으로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자, 국내 생산 기지와 기술 인프라, 일자리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본진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자금 투입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산업 체질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향후 5년간 450조 원을,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125조 2000억 원을 국내에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SK와 LG도 각각 2028년까지 128조 원, 향후 5년간 100조 원의 국내 투자를 약속했다.
이들 네 그룹의 합계는 약 803.2조 원으로, 단순한 확장 투자가 아니라 관세·공급망·기술 경쟁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배치로 해석된다.
삼성의 투자 계획은 반도체에 무게가 실려 있다.
삼성은 평택캠퍼스에 차세대 생산라인(P5라인)을 신설하는 등 향후 5년간 총 450조 원을 국내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으며, P5라인 단독으로 50조 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첨단 공정의 핵심을 국내에 둬 기술·인력·협력사 생태계를 결집하고, 관세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2026~2030 기간을 중심으로 총 125조2000억 원을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에는 전기차 생산 전환, 배터리·충전 인프라, AI 기반 자율주행·로봇·UAM 등 미래 모빌리티 전반이 포함돼 있다.
기존 계획보다 증액된 이 투자안은 국내에 기술·연구 거점을 두고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SK는 2028년까지 128조 원을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형 팹(공장) 건설 계획을 제시했다.
LG는 향후 5년간 100조 원을 국내에 투입하겠다고 밝히며, 그중 상당 부분을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4대 그룹의 대규모 국내 투자는 세 가지 핵심 전략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먼저, 해외 생산 확대가 야기할 수 있는 관세 부과 및 규제 강화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기 위해 국내 생산 거점을 강화함으로써 정책적 불확실성을 헤지(Hedge)해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또한, 고급 인력, 첨단 연구 시설, 협력사 생태계의 집적 효과가 곧 글로벌 초격차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판단 아래, 국내를 기술 혁신의 거점으로 확고히 하려는 의도를 반영했다.
여기에 더해, 국내 고용 유지 및 확대와 지역 경제 수성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고 장기적인 기업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강하게 작용했다.
결론적으로, 리스크 관리, 기술 집적, 사회적 책임 이행이라는 세 가지 복합적인 공통요인이 대기업들의 투자 우선순위를 국내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촉매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관세·보호무역의 불확실성이 구조화되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의 초대형 국내 투자는 단기적 방어를 넘어 산업·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다만 약속된 수백조 원의 투자가 실제 집행돼 산업 생태계·고용·지역경제에 실질적 효과를 내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의 실행력·조정 능력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투자가 한국 제조업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선언에 그칠지는 향후 집행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