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기 본지 회장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국체인 위드팜의 회원약국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행정조사를 벌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결국 전원 '혐의 없음'으로 결론나면서, 공단의 행정조사 권한 남용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해 요양급여 적정성 심사와 부당청구 확인을 위해 광범위한 현지조사(행정조사) 권한을 보유한다.
그러나 의료계 현장에서는 "공단의 조사가 행정 절차를 넘어 사실상 강압 수사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공단의 행정조사가 절차적 보호를 무시한 채 강압적으로 집행되는 사례가 반복돼 왔으며, 이번 위드팜 사건 역시 조사 방식과 절차상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위드팜 측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해 5월부터 회원 약국 30곳에 대해 '약사면허대여(면대) 의혹'을 제기하며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상식의 선을 한참 벗어났다.
사전 통보도 없이 조사 인력이 영업 중인 약국에 들이닥쳐 '조사명령서'를 흔들며 사실상 압수수색 수준의 조사를 진행했고, 일부 약국에는 4만6000쪽에 달하는 서류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약사 개인의 통장 내역까지 요구받은 사례도 있었으며, 약사들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 소명하겠다"고 여러 차례 요청했음에도 단 한 번의 소명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조사 근거를 공개하라는 요구에도 공단은 "내부 분석 자료"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즉, 절차적 정당성은 실종됐고, 피조사자는 '유죄가 추정된 대상'으로 취급된 셈이다.
결국 공단은 작년 말 경찰 수사를 의뢰했지만, 9개월간의 수사 끝에 '전원 무혐의'로 종결됐다. 8개월의 행정조사와 9개월의 수사 끝에 남은 것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결론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 피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조사 대상이 된 약국들은 '면대 의혹 약국'이라는 낙인이 찍혀 거래가 끊기고 매출이 급감했으며, 일부 약사는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호소했다.
약사들 사이에서는 "이건 행정조사가 아니라 '국민고통조사'였다"는 자조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보공단은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에 따라 정당하게 조사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며,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무오류의 권력'처럼 휘두르는 행태를 보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공단이 여전히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요양기관 현지조사, 급여 환수, 자료 제출 명령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공단이 여기에 압수·체포권까지 손에 쥔다면, 의료기관과 약국은 사실상 공단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된다.
이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이 오히려 의료현장을 통제하는 권력 기관으로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번 위드팜 사태가 던지는 교훈은 명확하다.
첫째, 행정조사 착수와 집행 단계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사전통지·소명권 보장·범위 제한)이 반드시 법제화돼야 한다.
둘째, 조사권과 수사권이 결합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외부 통제·감독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조사로 인한 피해를 신속히 구제할 수 있는 명예회복·보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공단의 조사권은 공익 실현을 위한 제도적 수단이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공단은 '건강보험의 수호자'가 아니라 '공포의 행정기관'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공단이 진정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한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 점검과 자정'이다.
위드팜 사건은 단순히 한 기업의 억울함이 아니라, "누가 공단을 견제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단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들의 조사권은 국민이 잠시 맡긴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가 칼로 변하기 전에, 스스로 내려놓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