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기 본지 회장
부동산R114가 5일 발표한 '2026년 상반기 주택시장 전망' 조사 결과는 정부의 부동산 인식과 시장 현실이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전국 1,458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의 52%가 '내년 상반기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하락 응답은 14%에 불과했다.
정부가 불과 한 달 전,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은 10·15 대책을 내놓은 직후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정부는 10·15 대책을 통해 투기수요 차단과 시장 안정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정반대의 인식을 보여준다.
응답자들은 집값 상승 요인으로 '핵심 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35.4%), '기준금리 인하 기대'(12.6%), '도심 공급 부족'(10.9%) 등을 꼽았다.
이는 규제의 강도보다 입지와 희소성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시장 학습 효과'가 뚜렷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거래 제한이 강화되면 매물이 잠기고, 이는 곧 희소성으로 이어져 오히려 가격 상승 기대를 키운다.
결국 '규제를 강화할수록 핵심지는 오른다'는 냉소가 시장의 상식이 돼버린 셈이다.
정부는 규제를 통해 단기적 안정 효과를 노렸지만, 실상은 불안 심리의 확산으로 귀결되고 있다.
거래가 묶이자 시장은 '지금 사지 않으면 더 오를 것'이라는 심리로 들썩이고, 이는 특정 지역으로의 쏠림을 부추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나 DSR 강화 같은 조치는 투기를 억제하기보다는 '거래 절벽'과 '매물 잠김'을 심화시키고 있다.
공급 확충이나 실수요자 지원이 병행되지 않는 규제는 결국 시장의 체온을 식히기보다 열을 더 높이는 처방에 불과하다.
이번 조사에서 전세가 상승 전망은 57.8%, 월세는 60.9%로 나타났다.
대출 규제로 매수 수요가 억눌리자 전세로 쏠림 현상이 나타났고, 임대인은 월세 선호로 전환하면서 전세 공급이 줄고 있다.
정부의 투기 억제책은 실수요자에게 주거비 상승이라는 부담으로 돌아가고 있고, 규제 일변도 정책의 부작용이 전세·월세 시장으로 전이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규제가 약해서가 아니라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시장은 '또 단기 규제'라며 냉소로 반응한다.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사라지면, 시장은 정부의 의도보다 과거의 경험을 따른다.
'정부는 늘 시장에 뒤처진다'는 인식이 굳어진 지금, 규제 강화만으로는 심리를 바꿀 수 없다.
진정한 안정은 금리·세제·공급의 균형 조정과 정책 신뢰 회복에서 비롯된다.
공급 인허가 제도 개선, 공공주택 확대, 실수요자 금융 지원 등 구조적 접근이 병행되지 않는 한, 시장의 불신은 되레 커질 것이다.
부동산R114의 이번 조사는 단순한 여론이 아니라 정책 신뢰의 지표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외칠수록, 시장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답하고 있다.
10·15 대책이 보여준 것은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정책 불신의 심화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규제를 더 세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를 복원하는 일이다.
정부가 시장을 설득하지 못하면, 시장은 정부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시장은 분명히 '상승'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