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기 본지 회장
올해 1분기 국내 건설경기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추락했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건설업 생산을 보여주는 건설기성(불변)은 1년 전보다 20.7% 급감했다. 이는 1998년 3분기(-24.2%)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건설기성은 작년 2분기(-3.1%)부터 줄기 시작해 3분기(-9.1%), 4분기(-9.7%)에 이어 올해 1분기까지 4분기째 줄었다.
감소 폭도 점차 커지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산기였던 2020년 2분기(-3.5%)부터 2022년 1분기(-1.9%)까지 이후 가장 긴 기간 줄고 있다.
지난 1분기 건축 부문 실적은 1년 전보다 22.8% 감소했다. 1998년 4분기(-30.3%) 이후 최대폭 감소다.
건설업 경기 침체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건설기성의 선행지표인 건설수주(경상)는 올해 1분기에 1년 전보다 7.7% 줄어들며, 작년 1분기(-10.4%) 이후 처음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 같은 지표는 고금리, 미분양 증가, 공공 발주 축소까지 삼중고에 빠져 벼랑끝에 내몰린 건설업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위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경기순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가 좀 내려가면 살아나겠지", "정부가 돈 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낡은 대응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다.
그간 한국 건설산업은 주택시장 호황과 공공 인프라 투자에 기댄 '외형 성장'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부동산 규제와 수요 감소,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가 본격화되면서 더 이상 이전 방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민간의 분양은 멈췄고, 공공의 역할도 예산 제약에 가로막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건설투자가 12.8% 감소하고, 주택 착공이 30% 넘게 줄어든 것은 단순한 '시장 냉각'이 아니다. 공급의 동력이 꺼졌고, 수요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경고다.
정부는 SOC 예산 조기 집행, 금융 지원 확대, 인허가 간소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물론 필요한 대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단기 처방만으론 건설업의 체온을 회복하기엔 부족하다. 문제의 본질은 '수요 창출'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지속 가능성'에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아파트 공급 중심 정책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이제는 지역 맞춤형 도시재생, 고령화 대응형 주거 인프라, 저탄소·친환경 건축 등 새로운 수요 구조에 맞춘 전환이 필요하다. 건설업을 단순히 콘크리트 산업이 아닌, 서비스 산업과 기술 산업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해외 수주 확대도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단가 경쟁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제는 스마트시티, 모듈러 건축, AI 기반 설계 등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재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함께, 민간의 혁신 투자 유도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청년층이 외면하는 3D 업종 이미지를 바꾸지 못하면, 미래 건설산업의 인력 기반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산업 전체의 구조와 일자리 질을 개선하지 않고선 진정한 회복은 없다.
이번 위기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건설업은 회생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고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이제는 단기 부양이 아닌, 산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건 건물 몇 채가 아닌, 산업의 '뼈대'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