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기업인 출신의 목회자가 있다. 바로 박동균 목사다.

박 목사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17살에 상경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돈을 번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주어지는 건 고된 일밖에 없었을 뿐더러,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위의 온갖 설움과 핍박도 견뎌내야 했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에 쥐어지는 몇 푼의 돈에 늘 감사함을 느끼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모토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그는 (주)광인과 (주)인광이라는 토목건설 전문회사를 세우고, 경기북부연합회 기독실업인 회장을 거쳐, 최고 경제인상까지 수상하는 등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나름 성공을 이뤘지만 늘 가슴 한편에는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했던 탓에, 배움의 시기를 놓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컸던 박 목사는 늦게나마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사업과 공부를 병행, 40중반의 늦깎이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검정고시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열정이 불타올라 대학과 대학원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이에 기인해 동국대 경영학과에 진학해 학사 학위를 받았고,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언론정보학과에서 언론학 석사를, 산업대학원에서 공학석사를 각각 받았다. 이어 토목환경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사업적 성공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채워가며 한창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뇌종양 선고를 받게 된 것.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겐 새로운 인생이 주어지는 기회이자 전환점이 됐다.

“뇌종양 이전에는 교회만 다니던 형식적 신앙인, 즉 선데이 크리스찬이지만, 뇌종양을 앓으면서 다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목사 안수까지 받게 됐습니다.”

박 목사는 목회자로서 무엇보다 소외계층에 대한 나눔과 베풂에 매진해 왔다. 그 행보는 최해순 사모와 함께 지금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해마다 100여 곳 이상에서 무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박 목사는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공부 중이다. 매일 집 밖을 나설 때면 이어폰을 끼고 성경공부 삼매경에 빠진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고사성어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인데, 자신처럼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만학의 길은 걷는 이들에게는 사재를 털어 장학금을 쾌척하며 응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박 목사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칭찬 일색이다. ‘무료봉사가 몸에 밴 사람’, ‘나눔의 정신이 투철한 사람’, ‘초긍정을 넘어 초초초긍정인 사람’, ‘항상 공부하는 목회자’, ‘삶의 모범이 되는 존경스런 목사님’ 등의 수식어를 붙이길 주저하지 않을 정도다.

“행복한 사람은 재산이 많은 사람도, 권력을 가진 사람도, 학식이 높은 사람도 아닙니다. 가슴으로 포용을 하고, 더불어 나누고 베푸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