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시장에 불어닥친 '전기차(EV) 한파' 속에서도 제너럴모터스(GM)의 수장 메리 바라 CEO가 "전기차가 결국 최종 목적지"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정부의 보조금 폐지로 가는 길이 험난하고 더뎌질 수는 있어도, 전기차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뚝심'을 내비친 것이다.
바라 CEO는 12일(현지시간) 디트로이트 오토쇼를 앞두고 열린 자동차언론협회 행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변화가 무역 정책보다 더 깊숙이 GM의 경영 전략을 흔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7,500달러(약 1,060만 원)에 달하던 전기차 세액 공제를 전격 폐지하고 내연기관차 연비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에 GM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 투자를 축소하고 내연기관차 생산 비중을 다시 늘리는 등 상당히 큰 변화를 단행해야 했다.
최근 GM이 발표한 60억 달러 규모의 손실 처리(Charge)는 이러한 전략 수정의 고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하지만 바라 CEO는 이것이 '포기'가 아닌 '속도 조절'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인센티브(보조금)가 없으면 전환에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충전 인프라가 확충되고 가격이 내려가면 결국 시장은 전기차로 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의 규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개발에 속도를 내고 일반 하이브리드 모델도 검토 중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도기적 '징검다리'일 뿐 고객에게 더 우수한 경험을 제공하는 전기차가 궁극적인 승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설명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경쟁사들의 행보에 대한 그의 시각이다.
바라 CEO는 최근 195억 달러의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며 전기차 프로그램을 대거 폐기한 포드(Ford) 등 경쟁사들을 겨냥해 "일부 업체들이 너무 빨리 발을 빼는 것이 놀랍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9년, 2030년, 2032년의 정치 지형과 규제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며, 현재의 트럼프 행정부 기조만 보고 미래 기술 투자를 완전히 접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최근 2031년까지의 평균 연비 기준을 리터당 약 21.4km(50.4mpg)에서 14.6km(34.5mpg) 수준으로 대폭 낮추는 안을 제안하며 내연기관차의 수명을 연장해줬다.
하지만 바라 CEO의 발언은 정권 교체에 따라 언제든 규제가 다시 강화될 수 있는 '규제 불확실성'에 대비해 유연성(Flexibility)을 확보해야 한다는 노련한 경영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GM의 전략은 '단기적응, 장기지속'으로 요약된다. 트럼프의 '내연기관 부활' 기조에 맞춰 하이브리드라는 방패를 들되, 물밑에서는 전기차라는 미래의 창을 계속 갈고 닦겠다는 의지다.
업계는 이번 바라 CEO의 발언이 트럼프 시대 자동차 업계가 생존을 위해 어떤 고차방정식을 풀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