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OECD 과학기술통계, 글로벌 컨설팅 그룹(맥킨지 등) 보고서 및 CS Ranking 등을 토대로 본지 종합 분석


인공지능(AI) 경쟁력 논쟁은 늘 기술과 투자 규모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는 현실은 다르다. GPU와 데이터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AI 인재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AI를 못하는 나라가 아니라, 핵심 인재를 축적하지 못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대학과 연구소에서 길러진 인재들은 해외로 향하고, 기업들은 인재 부족을 호소한다. 이에 한국 AI 산업의 성패를 가를 'AI 인재'의 현주소와 해법을 짚는다. - 편집자 주 -

대한민국이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내걸고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AI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인력 지표는 심각한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AI 인력의 양적 부족'이 아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진실은 'AI 리더급 핵심 인재(S급)의 빈곤과 이탈'이다.

본지가 OECD,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맥킨지(McKinsey)', 그리고 국내 고용정보원 데이터를 크로스체크한 결과, 한국은 AI 인력의 양적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질적 지표인 'K-지수(핵심 인재 밀도 지수)'에서 주요 선진국 대비 현저히 뒤처지고 있다.

# 피인용 지수(H-index) 역설'…논문 수'보다 '영향력'이 없다

한국은 대학 및 연구소에서 배출하는 AI 관련 석·박사 학위 취득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며 외형적으로는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 역량을 측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인 H-index (연구자 1인당 논문 피인용 지수)를 글로벌 수준과 비교하면 '질적 빈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H-index는 논문의 질과 연구자의 영향력을 나타낸다.

글로벌 AI 인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 7개국(G7) 및 중국의 상위 1% AI 연구자 H-index 평균은 48.5점(2023년 기준)인 반면, 한국은 35.1점에 그친다.

이는 국내 연구자들이 양질의 '원천 기술'과 '패러다임 전환적 연구'보다는 후속 연구나 응용 연구에 집중하면서, 글로벌 AI 담론을 주도할 만한 '대형 연구자'가 부족함을 수치로 증명한다.

# '연봉 역설'과 고강도 이직률…돈으로 묶을 수 없는 천재들

최근 3년간 국내 주요 IT 기업들은 AI 인재를 붙잡기 위해 평균 연봉을 최소 30% 이상 인상하며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그러나 고액 연봉 제시에도 불구하고, AI 개발자들의 이직률은 오히려 일반 IT 개발자의 이직률보다 1.5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표 1. 국내 IT/AI 인력 이직률 비교 (최근 3년 평균)]구분평균 연봉 상승률평균 이직률 (추정치)AI/ML 개발자32.5%18.1%일반 IT 개발자20.1%12.0%

이른바 '연봉 역설'은 인재 이탈의 핵심 원인이 '돈'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들은 연봉이 훨씬 높은 실리콘밸리나, 자율적인 연구 환경을 보장하는 유럽의 글로벌 빅테크로 향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통장의 숫자가 아니라, GPU와 데이터에 대한 무제한적 접근 권한, 그리고 기술적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다.

# '항아리형 단절' 심화…시니어가 전멸하다

한국 AI 인력 지도의 가장 시급하고 구조적인 문제는 '경력의 불균형'이다.

AI 프로젝트를 리드할 수 있는 경력 5년 이상의 시니어급 아키텍트 및 엔지니어가 극히 희소한 반면, 갓 교육을 마친 주니어 인력은 과포화 상태다.

고용정보원 및 산업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AI 인력 중 경력 3년 미만의 주니어(신입 포함) 비중은 55% 이상으로 과반을 차지한다.

반면, 프로젝트의 기획과 설계를 책임질 경력 7년 이상의 시니어급 전문 인력 비중은 10% 미만에 그친다.
이러한 '항아리형 인력 구조'는 주니어들이 배울 사수가 없어 빠른 속도로 이탈하게 만들고, 기업들이 고난도의 원천 기술 개발 대신 안전하고 단기적인 응용 프로젝트에 머물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결국 한국 AI 산업은 '실행자는 많으나 방향을 제시할 설계자가 부족한 상태'인 셈이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 AI 기업의 실패 요인 1위는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닌 '프로젝트 리더십 부재'였다. 한국의 항아리 구조가 이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