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기 본지 회장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운영하던 업체가 수천억 원 규모의 고객 자산을 모집한 후 출금을 중단해 '먹튀' 논란이 일었던 일이 있다. 바로 하루인베스트 사건이다.

이 회사는 2020년 3월부터 2023년 6월까지 6,000여 명으로부터 8,805억 원 상당의 코인을 예치받았는데, 이에 대한 출금을 중단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은 투자자들에게 은행처럼 연 15% 수익을 받을 수 있고, 원금도 보장한다고 홍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라, 이 회사는 2019년부터 완전 자본잠식 상태로 재무 상태가 매우 열악하고 인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회사 공동대표 2명과 사업총괄 1명 등 경영진은 사기 혐의로 기소됐고, 최고운영책임자는 업무상 횡령 혐의가 추가돼 재판에 올랐다.

그런데 지난 17일 1심 재판 결과, 중형이 내려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경영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이들에게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 "피고인들이 자신의 돈도 투자했고,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전적으로 결여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요약하자면 "사기를 칠 의도는 없었고, 그들도 사업 성공을 믿고 있었다"는 논리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분통 터지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돈은 사라졌고, 수익도 원금도 지켜지지 않았으며, 형사적으로 아무 책임도 묻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회삿돈 3억 6,000만 원을 사적으로 사용한 최고운영책임자가 횡령 혐의로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를 받았다지만, 전체 피해 금액에 비하면 그 책임의 무게는 너무나도 가볍다.

물론, 법적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판단이 국민이 느끼는 상식과 괴리될 때, 우리는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상자산 산업은 제도권 안팎에서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투자자는 '고위험 상품'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 너무 쉽게 방치되며, 업체는 책임을 피해간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선례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만약 제2, 제3의 하루인베스트가 나타나 또 다른 수천 명의 피해자가 생기더라도, '고의가 없으면 무죄'라는 논리로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법적 판단을 넘어, 투자자 보호 제도의 공백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으로, 우리에게 '제도는 정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던진다. 정의는 결국, 우리가 만들고 감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