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중공업이 올해 영국 스코틀랜드에 설치한 초고압 변압기. 사진=효성중공업
효성중공업이 전력 인프라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유럽 시장에서 초고압 전력기기 기술력을 앞세워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까다로운 기술 기준과 보수적인 발주 관행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유럽 주요국에서 잇따른 대형 수주를 따내며, 글로벌 전력 인프라 강자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최근 영국과 스웨덴, 스페인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초고압 변압기와 리액터를 중심으로 총 2300억 원이 넘는 수주를 확보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노후 전력망 교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유럽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영국이다. 효성중공업은 최근 스코틀랜드 전력망 운영사인 스펜(SPEN·Scottish Power Energy Networks)과 약 1200억 원 규모의 초고압 변압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설비는 영국의 탄소중립 정책인 '넷 제로(Net Zero)' 이행을 위한 핵심 풍력발전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다.
영국은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연계 전력기기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시장으로, 기술 신뢰도가 확보되지 않으면 장기 거래로 이어지기 어렵다.
효성중공업은 2010년 영국 진출 이후 15년간 단순 공급을 넘어 맞춤형 설계와 유지보수까지 포함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며 신뢰를 쌓아왔다.
그 결과 2022년 이후 영국 초고압 변압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수주 확대 흐름은 북유럽과 남유럽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이달 스웨덴의 주요 배전사업자로부터 약 500억 원 규모의 초고압 변압기 공급 계약을 따냈다.
해당 고객사와는 지난해부터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앞서 노르웨이에서도 초고압 변압기 수주에 성공해 북유럽 전반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주요 전력회사 및 에너지 기업과 약 600억 원 규모의 변압기·리액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남유럽 시장에서 거둔 첫 성과로, 효성중공업은 이를 계기로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수주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됐다.
기술 경쟁력 역시 유럽 최고 수준임을 입증했다.
효성중공업은 올해 프랑스 송전망 운영사 RTE의 초고압 변압기 단락시험을 통과했다.
단락시험은 극한의 전기적 충격이 가해지는 상황에서도 변압기가 정상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가장 까다로운 안정성 시험으로, 유럽 시장 진입의 핵심 관문으로 꼽힌다.
이번에 인증을 받은 제품은 프랑스 내 최대 용량인 600MVA급 초고압 변압기로, 약 50만 가구 이상의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변압기 용량이 커질수록 시험 과정에서 견뎌야 하는 전류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이번 시험 통과는 효성중공업의 설계·제작·품질 관리 역량이 유럽 최고 수준의 기준을 충족했음을 의미한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성과의 배경으로 조현준 효성 회장의 '기술 경영'을 꼽는다.
조 회장은 평소 전력기기를 수십 년간 현장에서 신뢰를 증명해야 하는 산업의 핵심 자산으로 규정하며, 품질과 기술 완성도를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강조해왔다.
보수적인 유럽 발주처들이 효성중공업을 단발성 공급사가 아닌 장기 파트너로 선택한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유럽 전력 시장은 에너지 전환과 노후 인프라 교체 수요가 맞물리며 성장세가 뚜렷하다.
시장에서는 유럽 전력 인프라 투자가 2030년까지 연평균 5% 이상 성장해 연간 60~7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이 해상풍력 설비 용량을 50GW까지 늘리는 등 주요국들이 대규모 에너지 전환에 나서면서, 초고압 전력기기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