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이 제작한 우즈베키스탄 고속차량. 사진=현대로템


국산 고속철도의 첫 해외 진출이 한층 앞당겨졌다.

현대로템이 우즈베키스탄에 공급하는 고속차량이 계획보다 이른 시점에 출고되면서, 국내 고속철도 기술의 성숙도와 수출 경쟁력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수출은 단순한 차량 판매를 넘어 한국 철도산업의 외연 확장과 기술 표준 수출 가능성을 확인한 사례로 꼽힌다.

현대로템은 10일 경남 창원 마산항에서 '우즈베키스탄 고속차량 초도 편성 출항식'을 열고 7량 1편성 규모의 첫 차량을 현지로 보냈다고 밝혔다.

행사에는 잠쉬드 압두하키모비치 호자예프 우즈베키스탄 경제부총리와 양국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해 상징성을 더했다.

김정훈 현대로템 레일솔루션사업본부장은 "국내 기술력으로 완성된 고속차량이 세계 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뜻깊은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출고된 차량은 총 42량 규모의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으로, 우즈베키스탄의 광궤 사양과 사막 기후에 특화된 설계가 적용됐다.

극한의 고온·모래바람 속에서도 안정적 성능을 내도록 방진 기술을 강화했고, 1286km에 달하는 장거리 노선 운영을 고려해 내구성과 승차감도 개선했다. 현지 교통 인프라의 질적 도약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조기 출고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30여 년에 걸친 국산 고속차량 개발·운영 경험이 자리한다.

KTX-산천을 시작으로 EMU-320(청룡), 차세대 EMU-370 등 국책 과제를 포함한 기술 축적이 이어졌고, 이번 차량 역시 국내에서 운행 중인 KTX-이음(EMU-260)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이미 검증된 동력분산식 시스템이 적용되면서 설계·구매·생산 전 단계에서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우즈베키스탄이 기존의 스페인산 동력집중식 차량을 동력분산식으로 교체하려 했던 시점에 한국형 고속차량 기술력이 맞물리며 수출 계약이 성사됐다.

모든 객차에 동력 장치를 배치하는 동력분산식은 가감속 성능과 수송력에서 유리해 장거리 고속철망 구축을 추진 중인 국가들의 관심이 높다.

이번 사업의 또 다른 경쟁력은 '90% 국산화율'에 있다.

현대로템과 국내 협력업체들이 구축한 안정적 공급망은 정부의 수출 금융 지원 심사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글로벌 고속철 시장에서 차량 성능만큼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현지 운영 안정성’과 ‘장기 공급 능력’을 한국이 갖췄다는 의미다.

현대로템은 우즈베키스탄 사업을 교두보 삼아 중동·중앙아시아 등 신규 수출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차량 인도 이후 장기 유지보수까지 책임지며 'K-고속철' 브랜드 신뢰도를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기술 개발과 해외 운영 경험이 축적될수록 추가 수출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며 "한국 고속철도의 우수성을 글로벌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말했다.

국내 영향도 작지 않다.

고속차량 수출은 철도 산업 전반의 공급망을 견인해 부품·소재 기업의 성장 기회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술 고도화와 연구개발 투자 유인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고속철 기술을 세계 4번째로 확보한 한국이 30년 넘게 기술 개발을 지속해온 이유도 결국 ‘수출 시장 확장’이라는 성장 동력과 맞닿아 있다.

우즈베키스탄행 첫 고속차량의 출항은 단순히 한 편성의 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 철도 기술의 본격적인 해외 무대 진출 신호탄이자, 산업 경쟁력의 새로운 전환점이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