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서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3,37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해 소비자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지만, 실질적 오너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과거 물류센터 화재나 '블랙리스트' 의혹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전문 경영인을 앞세운 채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이른바 '커튼 뒤 경영'을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5일 유통 및 IT 업계에 따르면,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쿠팡 측이 내놓은 공식 사과문의 명의는 강한승·박대준 대표이사로 되어 있다.

한국 국민 대다수에 해당하는 3천만 명 이상의 정보가 중국발 해킹으로 유출된 초유의 사태임에도, 정작 그룹의 총수인 김 의장은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미국 체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의장의 이러한 행보는 최근 불거진 '주식 대량 매도' 논란과 맞물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비판을 키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의장은 이번 사태가 공론화되기 전후 시점에 수십만 주의 주식을 매도해 수천억 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의 보안 시스템이 뚫려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동안, 오너는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했다는 주주와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김 의장의 '침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2021년 쿠팡의 한국 법인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한 이후, 국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에 대해 법적 책임 선상에서 물러나 있다.

현재 그는 미국 모기업인 '쿠팡Inc'의 의장직만 맡고 있어, 한국 법인인 '쿠팡(주)'의 운영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다.

이번 국정감사 및 청문회 증인 출석 요구에도 해외 체류 등을 이유로 불참하며 사실상 국내 여론과의 접촉을 차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김 의장의 태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전문가는 "동일인(총수) 지정은 피했지만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오너가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을 보이지 않는 것은 책임 경영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는 결국 쿠팡의 브랜드 신뢰도 하락과 주가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경찰은 이번 유출 사고의 경위와 쿠팡 측의 보안 조치 미흡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도 있어, 김 의장이 언제까지 '침묵의 경영'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