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간판기업의 성장스피드가 한국보다 6.3배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새로운 신규진입이 많았다는 의미로 중국 기업생태계의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2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미국 경제지 포브스 통계를 분석해 발표한 '글로벌 2천대 기업의 변화로 본 韓美中 기업삼국지'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2000에 속한 미국기업은 10년전(2015년) 575개에서 현재 612개로 늘어났다.

그사이 중국은 180개에서 275개로 폭증한 반면, 한국은 66개에서 62개로 줄었다. 중국 기업생태계에 '신흥 강자'들이 대거 출현하면서(10년간 52.7%↑) 지구촌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포브스의 글로벌 2000은 시장 영향력, 재무 건전성, 수익성이 좋은 리딩(leading)기업을 모은 것으로 국가별로 분석하면 그 나라 '기업생태계의 힘'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기업생태계의 성장세도 한국은 미국과 중국보다 미흡했다.

글로벌 2000대기업 중 한국 생태계(한국기업의 합산매출액)가 10년간 15% 성장(2015년 1.5조달러 → 2025년 1.7조달러)한 반면, 미국은 63%(11.9조달러 → 19.5조달러) 성장했다.

신흥강자가 돋보인 중국은 95%(4조달러 → 7.8조달러) 성장했다. 성장스피드가 한국의 6.3배에 달하는 셈이다.

대한상의는 "중국의 기업생태계가 '신흥 강자'를 배출해서 힘을 키웠다면, 미국은 'AI 등 첨단IT를 활용한 빠른 탈바꿈'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은 엔비디아(매출 성장률 2,787%), 유나이티드헬스(314%), 마이크로소프트(281%), CVS헬스(267%) 등 첨단산업ㆍ헬스케어 기업이 성장을 주도했으며 스톤X(금융상품 중개, 매출액 1,083억달러), 테슬라(전기차, 957억달러), 우버(차량공유, 439억달러) 등의 새로운 분야의 기업들이 신규 진입하며 기업 생태계의 스피드를 올렸다.

여기에 실리콘밸리·뉴욕·보스턴 등 세계적인 창업생태계를 바탕으로 에어비앤비(숙박공유), 도어대시(음식배달), 블록(모바일결제) 등 IT기업들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냈다.

중국은 알리바바(이커머스, 1,188%), BYD(전기차, 1,098%), 텐센트홀딩스(온라인미디어ㆍ게임, 671%), BOE테크놀로지(디스플레이, 393%) 등 첨단기술·IT 분야 기업들이 주로 성장을 이끌었다.

또한 파워차이나(에너지, 849억달러), 샤오미(전자제품, 509억달러), 디디글로벌(차량공유, 286억달러), 디지털차이나그룹(IT서비스, 181억달러) 등 에너지, 제조업, IT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군에서 글로벌 2000으로 진입하며 성장 스피드를 올렸다.

한국은 SK하이닉스(215%), KB금융그룹(162%), 하나금융그룹(106%), LG화학(67%) 등 제조업과 금융업이 성장을 이끌었으며, 새롭게 등재된 기업은 주로 금융기업들(삼성증권, 카카오뱅크, 키움증권, iM금융그룹, 미래에셋금융그룹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의 성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성장속도를 높이기 위한 기업 생태계 정책을 제언했다.

한국기업 생태계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지원'은 줄고 '규제'는 늘어나는 역진적 구조로, 기업이 위험을 감수해 가며 성장할 유인이 적은 상황이다.

실제, 김영주 부산대 교수가 12개 주요 법률(상법, 공정거래법, 외부감사법 등)을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면 규제가 94개로 늘고, 중견에서 대기업을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되면 343개까지 증가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이달 초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서 이를 위해 우선 메가샌드박스라도 활용해 일정 지역, 일정 업종에서라도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역에 '규제 Zero 실험장'을 만들어 기업들이 AI 등 첨단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얘기다.

실제 미국 실리콘밸리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신기술·신사업에 대해 '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최소한의 규제 원칙을 적용해 수많은 기술혁신과 유니콘 기업의 산실이 됐다.

이와 함께, 지원은 '균등하게 나누기'보다 '될만한 프로젝트'에 지원할 것을 권했다.

영국의 '섹터 딜(Sector Deal)'을 참고해 산업계에서 투자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정부가 협상을 거쳐 프로젝트에 매칭 지원하면 프로젝트에 속해있는 대·중소기업 모두에게 필요한 지원이 분배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규제가 필요하다면 '사전규제보다는 사후처벌', '규모별보다 산업별 제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안된다'며 원천적으로 막기보다는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도록 하는 열린 규제가 필요하고, 기업 사이즈별 차등규제보다는 산업별 영향평가를 실시해 규제를 걷어내자는 얘기다.

대한상의는 "반도체, AI 등과 같이 대규모 투자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첨단산업군에 한해서라도 우선적으로 차등규제를 제외시켜 산업경쟁력을 지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첨단전략산업법'을 개정해 전략기술에 대해 규제 예외 조항을 삽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한 해에 중소기업에서 중견으로 올라가는 비중이 0.04%, 중견에서 대기업 되는 비중이 1~2% 정도"라며 "미국이나 중국처럼 다양한 업종에서 무서운 신인기업들이 빠르게 배출되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