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기 본지 회장
롯데카드가 297만 명의 고객 정보를 해킹으로 유출당했다. 전체 회원의 3분의 1, 그중 28만 명은 카드번호·유효기간·CVC까지 털려 범죄에 바로 악용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보안사고가 아니다. 고객의 금융 생명줄이 송두리째 흔들린, 금융권 신뢰 붕괴 사태다.
그러나 회사의 대응은 한심하다 못해 국민을 모욕한다. 피해자 전원에게 내놓은 '연말까지 무이자 10개월 할부 서비스'라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안전한 금융 환경이지, 얄팍한 혜택이 아니다. 이런 대책은 "당신의 개인정보는 유출됐지만, 대신 무이자 할부를 드리겠다"는 조롱에 다름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고 대응 능력이다. 해킹 징후가 포착된 것은 8월 14일이었으나, 회사가 상황을 파악한 것은 보름 뒤였다. 이 기간 동안 수백만 명의 정보가 속수무책으로 털렸다.
고객의 돈으로 운영되는 보안 체계가 이 정도라면, 롯데카드라는 조직은 금융회사의 자격조차 없다.
'전액 보상' 방침도 내세웠지만 이는 법적으로 당연한 기본 의무일 뿐, 새로운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고객은 이미 카드가 해외에서 무단으로 쓰일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신뢰를 잃은 금융은 더 이상 금융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롯데카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은행, 보험사, 핀테크 기업 등 금융권 전반이 '보안 투자'를 비용으로 취급하며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소홀히 한 결과다.
금융당국 또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뒤늦게 조사만 반복하는 '뒷북 행정'으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의 정보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롯데카드는 앞으로 5년간 1,100억 원을 정보보호에 쓰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공허한 말잔치일 뿐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장밋빛 약속이 아니라, 투명하게 공개되는 실행과 즉각적인 성과다. 그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롯데카드는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신뢰를 우롱한 금융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롯데카드는 지금 '할부 서비스' 따위가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분노와 불신 앞에서 존재 이유 자체를 묻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