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시장에서 밀려난 인텔(Intel)이 재도약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인텔은 14일(현지시간)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오픈 컴퓨트 서밋'에서 내년 출시 예정인 데이터센터용 인공지능(AI) 전용 칩 '크레센트 아일랜드(Crescent Island)'를 공개하며, AI 시장 복귀를 공식 선언했다.
리프-부 탄(Lip-Bu Tan)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정체된 AI 사업을 재가동하겠다"며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모든 AI 시스템의 중심에 자리 잡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인텔은 최근 몇 년간 엔비디아와 AMD에 시장을 내준 상황에서, 'AI 추론' 분야에 초점을 맞춘 차별화 전략으로 반격에 나선 것이다.
# 추론에 최적화된 효율형 칩…에너지 절감과 경제성 강조
사친 카티 인텔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이날 행사에서 "크레센트 아일랜드는 AI 추론 작업에 최적화된 GPU로, 에너지 효율성과 비용 대비 성능을 극대화했다"며 "가장 높은 '토큰 경제성'을 목표로 설계됐다"고 밝혔다.
신제품은 소비자용 GPU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개발됐으며, 160GB 용량의 메모리를 탑재했다.
다만 AMD와 엔비디아 제품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신 한 단계 낮은 속도의 메모리를 채택해 원가 절감을 꾀했다.
제조 공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인텔은 내년부터 매년 새로운 데이터센터용 AI 칩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 엔비디아 독주 속 반격 나선 인텔…시장 재편 '시험대'
인텔의 AI 시장 재진입은 '생존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AI 붐이 본격화된 2022년 이후 GPU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엔비디아는 AI용 GPU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AMD가 그 뒤를 추격하고 있지만, 인텔은 '가우디(Gaudi)'와 '팔콘 쇼어즈(Falcon Shores)' 등 프로젝트 중단 여파로 시장 존재감이 크게 약화됐다.
AI 서버 시장의 규모는 2023년 450억 달러에서 2027년에는 1,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인텔의 AI 관련 매출 비중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그치며, 전체 반도체 매출의 대부분은 여전히 PC·서버용 CPU에 의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은 GPU 성능 경쟁보다는 전력 효율성과 가격 경쟁력, 그리고 CPU와의 결합 생태계 강화로 승부를 보려는 전략"이라며 "AI 칩 시장이 고가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경제성’은 인텔의 주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엔비디아, 인텔에 50억 달러 투자…'경쟁 속 협력'
주목할 점은 인텔과 엔비디아 간의 '묘한 공존 관계'다.
엔비디아는 지난달 인텔에 50억 달러(약 6조 9000억 원)를 투자해 약 4%의 지분을 확보했다. 양사는 향후 PC와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칩 공동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 같은 협력은 인텔이 CPU를 중심으로 한 AI 생태계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인텔 내부적으로는 GPU 수익성 강화와 함께, CPU를 모든 AI 시스템의 필수 구성 요소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이 장기 목표로 제시됐다.
# 구조조정 마무리한 인텔, AI 중심의 재편 가속
인텔은 2024년 말부터 진행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전통적인 CPU 부문 인력을 감축하는 대신, AI 및 데이터센터 사업부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도 미국·유럽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정책을 발판 삼아 강화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Gartner)는 "AI 반도체 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28%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인텔이 제시한 '저전력·고효율 추론 칩' 전략이 성공한다면, 엔비디아 독주 구도를 일정 부분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 AI 경쟁,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
AI 반도체는 이제 각국의 산업 전략과도 직결되는 핵심 기술로 자리잡았다.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인텔의 이번 행보는 'AI 주도권 탈환을 위한 재도전'으로 평가된다.
다만 업계는 인텔이 기술력·속도·생태계 측면에서 이미 한참 앞서 있는 엔비디아와 AMD를 따라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글로벌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인텔의 AI 칩이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려면 최소 2~3년의 기술 축적이 필요하다"며 "이번 칩은 '재진입의 신호탄'으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