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기 본지 회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직후 술자리를 벌여 논란이 일고 있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재승 차장, 이대환 부장검사, 차정현 부장검사, 박모 검사 등 공수처 간부 4명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당일인 지난 17일 저녁, 공수처 인근 고깃집에서 회식을 갖고 술까지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이들은 식사를 하면서 맥주 2병과 준비해 온 와인을 마셨으며, 와인 잔을 들고 건배를 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장면은 TV조선이 공개한 CCTV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지휘부의 격려와 집행에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의 자리였다”며 “웃고 즐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공수처의 술자리 회식을 두고 여론은 엇갈린 반응이다. “부적절 하다”며 공수처의 행태를 꼬집는 여론이 팽배한 가운데, “회식이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 “충분히 이해할 만한 수준”, “법적으로 어떤 문제도 없다” 등의 옹호적인 반응도 만만치 않다.

물론, 옹호론자들의 주장에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폭탄주를 마시며 흥청망청한 것도 아니고, 격무에 지친 공무원들이 하루를 마감하며 술한잔 기울인 것에 불과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공수처라면 달라야 하지 않았을까? 대통령 계엄 및 탄핵 사태로 국민과 언론이 공수처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데다가, 그동안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며 여론의 뭇매를 맞아왔던 것을 조금이라도 고려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굳이 대통령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 40여분 만에, 더군다나 룸도 아닌 누구나 볼 수 있는 열린 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술자리 회식을 가졌다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수처가 일말의 책임감이나 반성이 단 1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공수처가 거짓 해명을 했다는 점이다.

TV조선에 따르면, 보도가 있기 전, 공수처의 최초 해명은 “맥주 2병과 탄산음료를 주문했으나, 처·차장만 마셨고 수사팀이 음주한 사실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도 후에 나온 공수처의 공식해명은 처음과 달라졌다. “직접 가져간 와인과 맥주는 처장과 차장만 마셨을 뿐”이라며 ‘직접 가져간 와인’이란 문구가 슬그머니 추가됐다.

또한 처·차장만 술을 마셨다고 했지만, 영상에서 와인 잔을 들고 건배를 한 후 다 같이 입으로 가져가는 장면은 누가 봐도 처·차장만 마신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필자는 평소 공수처라는 석자가 지니는 이름값이 너무나 크고 무겁다고 생각했다. 국민의 신뢰를 근간으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공수처에는 부실이나 허위, 거짓이 절대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공수처는 이런 필자의 믿음을 거침없이 배신했다. 그 충격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탄식을 토하며 분루를 삼켜야 했는데, 과연 공수처의 거짓말이 이번으로 끝날까라는 의심이 든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앞으로 공수처의 행보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스스로 존재가치를 땅바닥에 처박은 공수처라면 차라리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게 옳지 않을까라는 상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