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럽산 제품에 최소 1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유럽 화학업계가 다시 위기에 몰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와 비용 부담으로 휘청였던 업계는 회복세를 기대했지만, 미국발 무역 충격에 고객사들이 발주를 미루고 수요가 위축되면서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화학산업은 기계·자동차·제약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수출 산업으로, 2023년 세계 화학제품 매출의 12.6%인 6,550억 유로(약 7670억 달러)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비중이 약 4% 줄었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주요 산업 경기 둔화 여파로 공장 폐쇄와 인력 감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고율 관세는 자동차·기계·소비재 등 화학제품 주요 수요 산업을 직격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유럽 화학기업들의 3분기 이익은 전년 대비 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토마스 슐테-포르비크 메츨러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에너지 위기 이후 줄곧 물량과 마진 회복을 기대했지만, 관세·아시아 경쟁 심화·가격 압박이 겹치며 독이 되는 조합이 됐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화학기업 BASF를 비롯해 브렌탁, 랑세스 등 대형 기업은 미국 현지 법인을 보유해 직접적인 관세 타격을 일부 피하고 있으나, 고객들의 발주 지연과 불확실성으로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BASF는 고객 주문 기간이 기존 3~4개월에서 수주일로 짧아졌다며 7월 전체 실적 전망을 낮췄다.
중국산 저가 공세도 우려다.
브렌탁 CEO 크리스티안 콜파인트너는 "미·중 협상이 무산될 경우 중국산 제품이 미국 대신 유럽으로 쏟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아크조노벨, 바커케미 등은 달러 약세와 수요 부진을 이유로 이미 올해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업계에서는 회복이 2026년께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지만, 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랑세스의 마티아스 자허트 CEO는 "3분기는 최악의 불확실성 속에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연말로 갈수록 수요 안정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중소·가족경영 업체는 더 큰 직격탄을 맞고 있다.
독일 호붐올레오케미칼스의 아널드 메르겔 CEO는 "디트로이트 인근 자동차 부품업체와의 계약이 무산되면서 성장 기회를 놓쳤다"며 "지금 상황에선 투자와 프로젝트 신뢰가 사라졌다. 그 자체가 '독'"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