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은 17일(현지시간) 미국 달러에 연동된 암호화폐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체계를 마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현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되었으며, 트럼프는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표결은 오랜 시간 연방 차원의 규제를 요구해온 디지털 자산 업계에 중대한 전환점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하원은 스테이블코인 법안 외에도 두 건의 암호화폐 관련 법안을 추가로 통과시켜 상원에 넘겼다.
이 중 하나는 암호화폐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이며, 다른 하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발행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법안인 '지니어스법(Genius Act)'과 암호화폐 시장 구조법인 '클래러티법(Clarity Act)'은 모두 초당적 지지를 얻었으며, 스테이블코인 법안은 찬성 308표, 반대 122표로 가결됐다.
스테이블코인은 일반적으로 1달러에 연동된 고정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이들은 암호화폐 거래자들이 토큰 간 자금을 이동할 때 주로 사용되며,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사용이 확대됐다.
지지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이 실시간 결제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안이 발효되면,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나 단기 국채 같은 유동 자산으로 100% 뒷받침돼야 하며, 발행사는 매달 준비자산의 구성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전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 관료이자 현재 블록체인협회 CEO인 서머 머싱거(Summer Mersinger)는 이번 표결을 "미국 디지털 자산 정책의 진화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디지털 자산 업계는 오랜 기간 명확한 규제 체계 마련을 요구해왔다. 규칙이 명확해지면 스테이블코인과 기타 암호화폐의 활용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원은 지난해에도 스테이블코인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당시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상원은 이를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가상자산 업계의 자금을 유치한 뒤 미국의 암호화폐 정책 전반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트럼프 일가의 암호화폐 관련 사업으로 인해 의회 내에서는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특히 민주당은 트럼프와 그의 가족이 자신들의 가상자산 프로젝트를 공개적으로 홍보하는 데 대해 불만을 드러내며, 올해 내 디지털 자산 법안의 통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트럼프의 가상자산 사업에는 지난 1월 출시된 밈 코인 '$TRUMP'와 그가 일부 지분을 보유한 암호화폐 기업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orld Liberty Financial)' 등이 포함된다.
백악관은 트럼프의 자산이 자녀들이 관리하는 신탁에 포함되어 있어 이해충돌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날 하원은 암호화폐가 증권인지 상품인지를 구분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는 '클래러티법'도 찬성 294표, 반대 134표로 통과시켰다.
암호화폐 업계는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복잡한 증권 규제를 피하고 더 쉽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해당 법안은 상원을 통과해야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서명을 받을 수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 법안이 트럼프의 암호화폐 사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규제가 완화돼 트럼프 관련 프로젝트에 사실상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편, 이날 하원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금지하는 법안도 함께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공화당 주도로 추진됐으며, CBDC가 미국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해당 법안 역시 하원 내에서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던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