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는 경제 활력 제고와 민생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세 형평성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고, 정책의 일관성도 찾기 어렵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고배당 기업 투자자에 대한 분리과세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자초했으며, 동시에 법인세 인상과 대주주 양도소득세 강화는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세금 폭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방향성과 대상이 엇갈린 조세 정책은 국민과 시장 모두에게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세제개편안의 핵심 중 하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다. 정부는 이를 자본시장 활성화와 소액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큰 혜택을 받는 것은 고액 자산가들이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에 따라 도입된 제도였다. 이를 폐지하는 것은 조세 정의를 훼손하고,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증여·상속세 완화와 상속세율 인하까지 더해지며 '부의 대물림'을 돕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고령화 사회에서 상속 자산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상위 1%를 위한 세제 혜택은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뿐 아니라 사회적 이동성도 가로막는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기업과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세 부담을 지우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법인세 인상과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확대다.
세계 각국이 글로벌 기업 유치와 산업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를 낮추는 가운데, 한국만 역행하는 모습이다. 이는 기업의 투자 의지를 위축시키고, 고용 창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이번 개편안에 대해 외국계 투자은행과 글로벌 투자자들은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씨티은행은 최근 글로벌 자산 배분 계획에서 아시아 신흥국에 대한 투자 비중을 '다소 확대'(0.5)에서 '중립'으로 축소했다.
씨티은행은 "한국의 세제개편안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려던 정부의 그동안 노력과 180도 대치되는 내용"이라며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이 최근 코스피지수 상승을 견인해 온 만큼 이번 개편안이 지수 추가 하락을 부추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계 IB인 CLSA도 세제개편안을 두고 "채찍만 있고 당근은 없다"며 "실망스러운 정책 때문에 금융·지주사 관련주를 중심으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그간 추진해 온 '코리아 밸류업' 정책이 증시 체질 개선과 글로벌 신뢰 확보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번 세제 개편은 그 흐름을 정면으로 뒤엎는 결정이다.
투자 유치를 외치면서 동시에 투자를 막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한국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뿐이다.
세제개편안은 민생 안정책도 포함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출산 지원금 비과세나 다자녀 가구 지원 확대는 긍정적이지만, 고물가와 고금리로 허덕이는 서민들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대로라면 줄어드는 세수는 복지 예산 축소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우고, 정책의 일관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성급하게 폐기하기보다는, 소액 투자자 보호와 고액 자산가에 대한 과세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방향으로 손질해야 한다.
증여·상속세 역시 부의 집중을 막고, 사회적 공정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감안해 유지 또는 강화해야 한다.
법인세 정책은 세계 흐름을 반영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기업의 세 부담 완화는 불필요한 감면이 아닌 경쟁력 강화와 고용 유인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또한 민생 안정은 일회성 지원금이 아닌 구조적인 물가 안정, 금리 부담 완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세제 지원 확대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부자 감세'와 '세금 폭탄'이라는 이중적 프레임에서 헤매서는 안 된다.
단기적인 세수 확보나 표심에 기댄 포퓰리즘적 접근은 중장기적으로 국민적 신뢰를 잃고, 시장의 외면을 부를 뿐이다.
세제는 단순한 수치 조정이 아니라, 국민의 삶과 국가 경쟁력을 동시에 아우르는 가장 강력한 정책 도구다.
지금이야말로 조세 형평성과 정책 일관성을 회복하고, 국민과 시장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세제 개편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개편안은 경제 활력은커녕 신뢰를 잃고, 사회적 갈등만 부추긴 채 역사의 실패한 사례로 남을지도 모른다.